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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ation/책

덤불 속 - 다케히로의 눈빛

하나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건에 대한 견해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사람은 각자의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사건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떠한 사건에 대한 전말이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까지 우리는 그 사건을 둘러싸고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내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점에 무게를 두고 그 사건을 바라볼 것인지 하는 것이다. 물론 각자의 견해가 그 자체로 의미 있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 목적은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 사건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꿰뚫어 보아야 한다.

어떠한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지고 나면, 우리는 그 사건의 중심에 ‘돈’이나 ‘정신병’, 혹은 ‘감정’이 있었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건의 중심에 ‘돈’ 문제가 있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나면, 마찬가지로 자연스레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단편적인 사실들을 나열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그 사건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덤불 속>의 살인사건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물 한 명 한 명의 증언이 의뭉스럽기 그지없긴 하지만, 거기서 우리는 적어도 돈이나 정신병이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다. 도둑 다조마루는 돈이 아니라 성욕(나졸에 따르면), 혹은 사랑(다조마루에 따르면)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고, 무사 다케히로는 “성격이 무난하고 누구에게 원한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다조마루의 욕망 혹은 사랑, 아내 마사고의 ‘지기 싫어하는 면’이다.

마사고에게 첫 눈에 푹 빠진 다조마루는 그녀를 얻기 위해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 다조마루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다조마루 자신의 증언은 물론이고 다케히로, 마사고의 증언에서도 밝혀졌으며, 심지어는 스님이나 나졸의 증언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다조마루가 지녔던 물건들이 다케히로의 소지품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조마루의 예상치 못한 습격으로 다케히로가 포박 당하고 마사고가 강간당하는 데까지는 다조마루, 마사고, 다케히로의 증언(제대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다조마루나 마사고의 증언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생략된 것으로 봐야한다.)이 일치한다. 달라지는 것은 그 다음부터인데, 다조마루와 마사고, 다케히로까지 모두 자신이 다케히로를 죽였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사고의 태도변화이다. 다조마루는 그녀가 자신이 죽거나 자기 남편이 죽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으며, 다케히로는 그녀가 도둑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고 말했으며, 그녀 자신은 남편의 눈빛에서 경멸을 보고 남편과 함께 죽어버리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태도변화는 공통적으로 제시된 부분임과 동시에 각자기 살인을 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라는 면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내야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은 서술자가 유일하게 인물의 증언에 끼어든 부분이다. 유령이 된 다케히로는 마사고가 자신을 가리키며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회상하는데, 그 때 서술자는 “그 말을 들은 도둑의 얼굴빛도 하얗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것은 다조마루가 그 부분에 있어서 거짓을 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조마루의 경악한 표정을 통해 다케히로의 말이 맞다는 것을 서술자가 직접 알려주었기 때문에, 마사고의 말 또한 틀렸다는 것까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도둑에게 자신의 남편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을까. 다조마루가 처음의 목적을 다 이룬 후에, 즉 다케히로가 포박되고 마사고가 강간당한 직후의 상황에 주목해보자. 다케히로는 마사고에게 도둑의 말을 제발 듣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고 하고, 마사고는 그의 눈빛에서 경멸을 보았다고 말했다. 다조마루의 경우에는 눈빛에 대해서는 보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정황상 다조마루의 팔에 갑자기 그녀가 미친 것처럼 매달려 애원한 것은 마사고가 남편의 눈빛을 본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울다가 남편의 눈빛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태도를 바꾼다. 그렇다면 그녀가 남편의 눈빛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두고 “남자보다도 지기 싫어하는 면”이 있다고 말한 것이 그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사고의 성격에 집중해서 남편의 눈빛이 어떻게 그녀를 변화시켰을지 추측해보자. 그녀가 도둑을 따르지 말라는 다케히로의 눈빛을 선의로 받아들였다면 과연 그녀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존심이 센 마사고는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물론 다케히로가 이미 다조마루로부터 습격을 받아 스스로의 말마따나 “구천을 헤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사고가 그의 눈빛을 그의 의도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강간을 당하고 난 뒤에 그녀의 정신 또한 온전치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의도를 잘못 받아들였을 수 있다.

다케히로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가 남편의 눈빛에서 무시 혹은 경멸을 보았다면, 마사고가 직접한 증언에서처럼 같이 죽어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다케히로를 죽이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다조마루가 그의 증언에서처럼 덤불 밖으로 가려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증언과 달리 그는 마사고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이 온전하게 그녀를 가질 수 있을 것인지 물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다조마루의 증언 상에 나타나있는 그의 감정상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마사고는 끝까지 지조를 지키다가는 다조마루가 자신을 납치하거나 자신만을 죽여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바라는 대로 남편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그녀는 다조마루의 뜻을 따르는 척하면서 남편을 죽이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조마루가 남편을 죽인 것일까? 이에 관해서는 나무꾼이 다케히로의 상처에 관해 말한 부분이 단서가 될 것이다. 그는 다케히로의 상처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것은 마사고, 혹은 다케히로의 증언대로 그의 상처가 스님이 언급한 다조마루의 장검이 아닌 마사고의 단검으로 난 상처이기 때문이다. 다조마루는 다케히로의 말대로 그녀에게 실망해 떠나버렸을 것이다. 여기서 범인은 두 명으로 좁혀진다. 마사고의 살인, 혹은 다케히로의 자살,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이때 주목해야 할 순간은 도둑이 둘 앞에서 사라진 후이다. 다케히로는 그 후에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무꾼은 다케히로 주변으로 강한 저항의 흔적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케히로가 강한 저항을 할 만한 타인은 마사고 밖에 없다. 나무꾼이 시신 근처에서 발견한 비는 더욱 더 유일한 여자인 마사고가 범인임을 말해준다. 단검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 또한 마사고가 범인임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그 시대에 여자는 만일의 상황을 위해 단검을 몸 깊숙한 곳에 지니고 다녔으며, 마사고의 경우에는 자결까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검을 그곳에 두고 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케히로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냈다면, 우리는 그 자(여기서는 그녀)에 대해 판결까지 해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그녀가 다케히로를 죽였는지’, 더 나아가 왜 그들이 거짓을 말해야 했는지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말했다싶이 마사고는 다케히로에게서 자신을 무시, 혹은 경멸하는 눈빛을 보았다. 그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편을 그만큼 믿고 있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우발적인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의 성격, 자신의 상황, 그리고 평소 자신과 남편의 신뢰 같은 것에 의해 살인하게 되었다. 남편에 대해 처음부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살인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녀에게 참형을 내리기 힘들 것이다.

셋 모두의 증언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그들 각자가 원했던 방향을 거기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의 손으로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기를 바랬으며, 다조마루는 자신이 다케히로에게 승리해 그녀를 온전히 갖고 싶었을 것이다. 다케히로는 자신이 아내로부터 죽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가부장제에서 아내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유령으로 나타나서까지도 숨기고 싶은 사실일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이 비극적인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마사고는 남편을 믿지 못하여 그 눈빛을 무시, 혹은 경멸로 보았고, 다케히로는 아내의 진심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불명예로 여겼다. 다케히로는 자기 자신이 사랑했던 마사고를 믿지 못하고 그녀가 부정하다 생각해 그녀를 넘어뜨리고 떠나버렸다. 덤불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결국 오해로 가득 차 돌이킬 수 없는 일까지 일어나버린다는 것을 보여준 슬픈 사건이다. 다케히로의 눈빛은 바로 오해의 시작이자 살인의 동기였다는 것은 이러한 페이소스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