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2018년 <고등래퍼2>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꽤 충격을 주었다. 그 해 영국에서 만난 친구가 엄청 좋다며 추천해준 곡인데, 정말인지 오랜만에 상당한 수준의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찬 가사를 듣게 되어 아주 반가웠다. 이제 하온(HAON)과 빈첸(Vinxen) 모두 그 때보다 더 성장해서 어엿한 직업 가수가 되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가사를 파헤치는 재미가 있는 노래를 계속 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주절주절 주석과 감상을 남긴다.
이 노래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제 우리 모든 물건이 달고 있는 이 바코드를 통해 삶에 대한 여러가지 비유를 하고 있다. 바코드의 흑과 백에서 오는 대조는 <고등래퍼2>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여준 하온, 빈첸 두 명의 모습을 통해서 더 강력해진다. 프로그램 내내 하온은 삶을 긍정하려 하지만 빈첸은 반대로 비관하려고 한다. 둘의 이 대화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병재: 사람마다 그게 있잖아, 행복의 기준이 있고 힘든 것의 기준이 있는데, 아직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행복하진 않거든, 그것 때문에.
김하온: 그럼 넌 어떨 때 행복한데? 너의 원동력은 음악이라고 했잖아.
이를 <고등래퍼2>를 통해서 아주 가까워진 두 명이 자주 나누던 대화 방식이라 생각해본다면, 두 명이 같이 하는 노래도 해왔던 대화와 같은 레파토리로 구성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병재: 나는 비관론자니까 내가 하던 얘기 그냥 담으면, 네가 너의 철학으로 내 얘기를 받아치고...
이병재
끊어버리고만 싶어 이거 다
그만 놔버리고 싶어 모두 다
엄마는 바코드 찍을 때 무슨 기분인지
묻고 싶은데 알고 나면 내가 다칠까
빈첸은 음악을 함으로써 따라오는 돈이나 명예보다 음악 자체를 자기 삶의 원동력으로 지목한 적이 있다. 돈, 즉 대중에게서 매겨지는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나 명예, 즉 대중의 관심과 기대 같은 것이 삶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빈첸에게는 오히려 끊어버리고만 싶은 쇠사슬일 뿐이다. 더 넓게 해석하자면 살면서 해야하는 모든 것들이 걸리적 거리고 부산스럽기만 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편의점에서 일하며 단순반복 노동을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힘들 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이를 이겨낼 수 없는 자신을 더욱 깊은 비참함으로 내몬다.
난 사랑받을 가치 있는 놈일까
방송 싫다면서 바코드 달고 현재 여기
흰색 배경에 검은 줄이 내 팔을 내려보게 해
이대로 사는 게 의미는 있을지 또 궁금해
그 비참함 속에서, ‘어머니에게 조차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놈일지 몰라’ 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고, 이 때문에 순수하게 음악만을 좇아 살아보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꺾인 것에 또 절망한다. 이렇게 절망하는 자신과 방송이라는 매스미디어에서 상품화되고 내 슬픔과 절망에도 바코드가 달리는 상황에 그는 자신의 팔에 새겨진 자살기도의 흔적을 내려다보며, 우연치 않게 이것 또한 바코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의 의미에 의문을 던진다.
김하온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우린 앞만 보고 살도록 배웠으니까
주위에 남아있던 행복을 놓쳐 빛나지 못하는 거야
반대로 하온은 앞만 보고 살지 않고 삶의 과정 속에 놓여진 행복에 주목하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방송에 나와 인기를 얻는 금전적인 성공이나 성과 같은 측정가능한 목적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방법은 삶을 끊어버리고마는리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면서 주위에 남아있던 행복 순간에 집중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병재
네까짓 게 뭘 알아 행복은 됐어
내 track update되는 건 불행이 다 했어
잠깐 반짝하고 말 거야 like 바코드 빛같이
우리도 마찬가지
그러자 빈첸은 행복 자체를 부정한다. 어차피 대중이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내 불행을 말하는 것이며, 이 인기와 관심도 결국 바코드를 찍을 때 나는 빛처럼 잠깐 반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코드 찍는 소리, 계산하는 소리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우리의 음악이나 존재를 어쩌면 그 누구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이미 절망에 빠진 그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자체를 부정하면 상처 받을 일도 더 적어질 것이라 느낀 것 같다.
김하온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줘 우리 추억을 위해
대중에게 이 <고등래퍼2>가 삑하는 짧은 시간 동안 소비된다고 한들, 하온에게는 이 기회는 힘들다고 해도 행복한 추억이 담긴 또 하나의 기억이기 때문에, 그는 그 흔적(영수증)을 품고 다음으로 나아갈 것이라 말한다.
이병재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버려줘 마지막 존심을 위해
빈첸은 상업적인 쇼에 불과한 <고등래퍼2>의 이 스테이지는 내가 돈이라는 것에 무릎을 꿇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흔적(영수증)을 지워내고 싶다고 한다.
김하온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줘 우리 추억을 위해
이병재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이 훅에는 ‘삑 그리고 다음’이 8번이나 되풀이 된다. 물론 신선한 둘의 플로우로 인한 중독성도 좋지만, 이러한 반복이 청취자로 하여금 상품으로서의 무대, 상품으로서의 음악, 더 나아가 상품으로서의 캐릭터(하온과 빈첸)을 당신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기에 더 큰 울림을 준다.
김하온
비틀비틀 거리다가 떠난 이들의 뒤를 따를 수도
굳이 피를 안 봐도 되는 현실에 감사를
뒤를 잇는 것이 아닌 그저 잊는 힘을 기른
나는 기를 쓰지 않고 만들어 믿음뿐인 길을
자꾸만 고슴도치처럼 스스로를 우울로 내모는 빈첸의 모습에 하온은 더 강한 어조로 말을 해본다. 사람은 우울에 빠져 자책하다가 아무런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잊혀질 수 있기도 하고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는 해서는 안될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더해 하온은 빈첸의 원동력인 창작욕을 자극한다. ‘결국 그렇게 가다가는 제대로 된 자취를 남기지 못한 많은 사람들과 같아진다. 자신에게 침잠하기만 하는 것으로 지금은 track update를 할 수 있겠지만 네가 원하는 진정한 창작, 예술로 이어지지 않는다’라는 메시지 뒤에는 힘든 일들을 잊는 것 또한 우리가 가져야 할 힘이며, 이것은 기를 쓰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하다보면 되는 습관이고 태도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비밀을 아는 너는
웃지도 울지도 아리송한 표정을 하고 있군
검은 줄들의 모양은 다 다르긴 해도
삑소리 나면 우리 모두를 빛으로 비추겠지
그도 위의 말이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메시지(이렇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뿐 아니라 부정적인 메시지(하지만 난 지금 그렇게 못하잖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도 전달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결국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희망이란 증명할 수 없는 믿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도 즉, 검은 줄들의 모양이 다 다르긴 해도 그는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행복해질 기회(빛)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병재
비틀비틀 거리는 걸음이 나다운 거 같아
깊은 늪에 빠져있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 난
여기서 빈첸의 그루브가 상당히 좋은데, 단순히 신나는 분위기의 그루브가 아니라 정말로 방황하는 자신에게 매몰되어버린 느낌이 아주 잘 전달되었다.
김하온
난 늪에 빠진 기분이 어떤진 모르겠으나
넌 갈 수 있어 지평선 너머의 미지의 곳으로
삶이란 흐르는 오케스트라 우리는 마에스트로
하온-희망 / 빈첸-절망이라는 상반되는 구조는 깨지지 않지만 곡 안에서 계속 그 양상이 달라지는 부분은 재미있다. 서로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던 전보다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빈첸이 ‘늪’이라는 이미지를 던졌기에 그는 반대로 ‘바다’와 ‘여행’를 제시한다. ‘늪’이 주는 삶의 구질구질한 반복성과 ‘지평선(바다), ‘미지의 곳(여행/탐험)’이 주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흥미진진함, 의외성은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하온은 늪 -> 바다로의 전환은 우리가 삶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로서 주체적으로 살아야만 가능하다는 점도 짚고 넘어간다.
여기서의 하온은 삶에 대한 찬미나 결의에 가득 찬 것이 빈첸의 그것과는 정 반대인데, 플로우만으로도 둘의 시선차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병재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버려줘 마지막 존심을 위해
김하온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줘 우리 추억을 위해
이병재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버려줘 마지막 존심을 위해
김하온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줘 우리 추억을 위해
이병재
어떻게 멀쩡하겠니
나보다 고생 덜한 래퍼들이 전부 머리 위
그래 운, 그게 내 문제니
세례명을 달고 신을 등진 내 잘못이니
아마도 내가 작년 이맘 때에 알바 아니면 정신과
다니지 않고 등골 빨아 랩만 더 했다면
후회들은 내 흉터와 새벽 공기 눈물을
내 기억 제일 초라한 장면으로 남겨줘
남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계속해서 삶을 비관하던 빈첸은 과거를 후회하다 오히려 더 깊은 우울과 무기력을 느끼며 악순환에 빠진다. 후회와 눈물로 얼룩진, 빈첸 스스로 엉망이라고 느끼는 작년의 일상이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김하온
남겨줘 난 내게 사랑만 남겨둬
우리 사이를 선으로 그으면 모양은 마름모
하나도 놔두지 않아 나쁜 건 아 근데
영감이 될 수 있는건 인정해 야 나도 but
Boy you need meditation
흐르는 건 피 아닌 perspiration
We gotta be new generation
Now be patient
우린 새로운 변화의 때에 있어
방향을 모르겠다면 믿고 나를 따라와줘
빈첸과 달리 하온이 가장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처럼 우리 둘은 두개의 평행선처럼 하나도 공통점이 없지만 우리가 이보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즉 무의미한 평행성이 아니라 완결성을 갖는 하나의 도형이 되기 위해는 우리(비관과 낙관) 사이가 이어져야만 한다고 강하게 말한다. 이렇게 서로를 잇기 위해 하온은 슬픔도 영감으로나마 받아들일테니 빈첸에게도 관조를 위한 명상을 제안한다.
이어서 이렇게 노력할 때 우리가 흘리는 것은 서로 부족하기 때문에 흘리는 피, 부정적 희생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한 땀(perspiration), 값어치 있는 과정이 될 것일테니 참을성을 갖고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다.
이병재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버려줘 마지막 존심을 위해
김하온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줘 우리 추억을 위해
이병재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버려줘 마지막 존심을 위해
김하온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줘 우리 추억을 위해
그러나 아직 좁혀지지 않는 둘의 의견차.
이병재
Meditation 내 텐션에 도움 안 돼
앉아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
바코드를 횡단보도 삼아
뛰어서 벗어나야겠어 이 네모 밖으로 말이야
빈첸은 명상으로 대표되는 하온의 태도가 결국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 속 편하게 앉아있는 짓일 뿐이라고 하며, 지금 자기 자신을 둘러싼 상품화된(=바코드를 달고 있는) 무대를 벗어나보겠다고 한다.
김하온
Depression은 내 텐션에 도움 안돼
우울에 빠져 자빠져 난 시간이 아까워
바코드가 붙었다면 I’m on a conveyor
외부와 내부의 의도를 동시에 쥐고 달려 what
그러나 하온은 우울에 빠져있는 것이 오히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어차피 무대, 음악, 예술까지 바코드가 붙는 세상이라면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도망칠 수 없으며, 나는 자신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당당히 상품으로 올라 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자기 내부의 의도와 자기 외부에서 자신의 음악을 상품화시키고 팔고자 하는 의도는 공존할 수 있으며, 나는 두가지 모두놓치지 않겠다는 포부를 아주 함축적으로 표현해낸다. 거꾸로 보면,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달려야지만 자기 외부의 편집, 기획, 운, 트렌드와 내부의 창작력, 재능, 실력, 진정성 모두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고조되는 둘의 호흡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좋은 Finish Line으로써 긴 여운을 남긴다. ‘틀에서 벗어나지(Out of Box)’ 않아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메시지는 강렬했으며, 현실적이었다.
김하온, 이병재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삑 그리고 다음
영수증은 챙겨주길 우리의 추억을 위해
마지막 후렴에서는 빈첸도 현실을 긍정하고 추억으로써 간직하겠다고 말하면서 마무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