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아직, 독립하지 못한 당신에게
독립하셨나요?
독립운동가는 왜 해방운동가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로 불릴까요? 독립은 단순히 따로 떨어져나오는 혼자 있는 게 아니라 혼자서 결정을 내릴 힘과 권리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독립운동가는 우리가 일제에서 해방되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나라가 우리 스스로 국가대소사를 결정 내릴 힘과 권리를 되찾기를 바랬던 것이죠. 거창한 국가 얘기 말고 당신에 대한 얘기를 해봅시다. 당신은 한 명의 개인으로서 독립하셨나요? 어떤 일이든 스스로 결정을 내릴 힘과 권리를 갖고 계신가요, 아니면 남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게 주저되고, 또 하고 싶은 걸 할 때 남 눈치를 보시나요? 이 글은 아직 독립하지 못한 모든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당신에겐 당신만의 영역이 있나요?
리버티(liberty). 자유로 번역되는 이 말은 단순히 국가나 사회의 통제를 받지 않을 자유(freedom)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은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절대적 권리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예컨대,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다.’던가 ‘오늘은 야한 옷을 입을래.’하는 말을 누구에게나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때, 결혼이나 복장은 리버티, 즉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당신만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야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어떤 거대한 권력이 당신을 어떻게 하는 건 아니지만(freedom은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내 권리를(liberty를) 존중하진 않습니다. 그런 말을 했을 때, 직장상사가 출산율을 들먹이면서 요즘 애들이 결혼을 안 해서 문제라고 한다던가, 애인이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고 말할 때, 당신의 자유(liberty)는 침해당합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 자체가 개인이 독립하기 힘든 사회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저는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래로 우리가 단 한 번도 개인에 집중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 살아보세’는 우리나라가 성장하면 우리 가족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 위에 세워진 구호였지만, 그 희망은 무너졌습니다. 그 후로 ‘청년층’이나 ‘노년층’ 문제가 부각될 때도 어디에도 그 ‘층’을 구성하는 한 명 한 명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론 사회가 개개인을 신경 쓰지는 못하죠. 그렇다면 당신의 작은 사회, 당신의 지인, 동료, 가족은 어떤가요? 당신의 자유를 존중해주나요?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낙담하지 마세요. 그들을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독립하는 것, 개인의 독립을 인정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주어지거나 지켜지지 않았을 뿐, 당신에겐 당신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습니까?
독립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존중받아 마땅한 한 명의 개인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예요. 우리사회가 자유화 된지가 벌서 30년인데, 우리는 아직도 검열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나 거대권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검열합니다. 바야흐로 자기검열하기 좋은 시대입니다. ‘~하면 ...충’, ‘OOO충 특징’이라는 말이 떠도는 혐오와 자조의 사회에서는 좀 더 손쉽게 자기검열을 하고 좀 더 손쉽게 개인으로서 갖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있게 해줍니다. 안 그래도 개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 사회에서, 당신은 사회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 편한 길이라 느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당신이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서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크고 작은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당신이 사는 삶은 사회의 삶이 아니에요. ‘대한민국 국민의 삶’도 아니고 ‘2018년 청년층’의 삶도 아니에요. 당신의 삶입니다. 개인의 삶이죠, 존중받아 마땅한. 그 누가 비웃거나 싫어해도, 일단 자기 자신만은 자신을 사회에서 (격리가 아닌) 독립한 한 명의 개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사회로부터 자유(liberty)를 침해당한다고 해서 자기 스스로 조차도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내맡긴다면 거기에 당신의 삶은 없습니다. 빼앗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외쳤던 분들이 없었더라면, 다시 말해 모든 조선인이 스스로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독립하지 못했을 겁니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으세요?
“어떻게 그렇게 해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걸요.”라고 말하실 수도 있겠네요. 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저는 모든 욕구 중에 명예욕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남한테 인정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제가 원하는 인정은 제 자신이 자신 그 자체로 인정받는 거예요. 남의 잣대에 맞춰서 하고 싶은 걸 하나하나 포기하면서 ‘만들어낸’ 저는 사실 제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인정받아서 뭐해요. 하고 싶은 걸해서 하고 싶은 걸로 인정받는 게 진짜 아닐까요?
당신의 독립선언
자기 자신을 독립한 개인으로서 인정했다면 그 다음은 사회가 인정할 차례입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의 독립을 인정해주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가 인정을 하냐고요?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죠. 네. 사회를 바꾸자는 겁니다. ‘결국 무리한 소리까지 해대는군.’하고 말하시는 소리가 들리네요. 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조금이라도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싶고 또 그렇게 행동하고 싶다면 개인의 독립이 존중받아 마땅하단 걸 주장하는 건 아주 필요한 일이에요.
주장이란 건 말이죠. 그냥 개인적인 생각에서 그친다면 이뤄내지 못할 것을 이뤄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한 화장실 벽에 ‘이완용 자지 보지’라는 낙서를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말요. 저는 그 사람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때문에 우리가 해방을 맞이했을 때 우리가 스스로를 ‘조선인’, ‘한인’이라는 인식을 한 것이니까요. 당신이 스스로 선택해야 할 작은 문제 하나하나에 참견하는 사람은 애초에 당신이 ‘개인’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라도 당신만의 ‘독립선언’을 하세요. 그럴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 인터넷에서나마 당신은 당신의 독립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먼 길을 돌아 그 사람에게 도달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압니다. 사회를 바꾸는 건 정말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독립선언은 사회를 바꾸는 것 뿐 아니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바로세우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당신의 독립선언 자체가 당신이 개인으로서 독립을 말할 ‘권리’를 갖고 ‘힘’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런 과정에서만, 당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사회가 가진 어떤 대단해 보이는 권력 뒤에서, 개인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회
당신에게 주변사람과 싸우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네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부드러운 화법은 제쳐두고,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과정에 무엇보다도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노래, 영화, 소설, 시, 소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저는 사랑만큼 큰 힘을 가진 마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독립선언에서 자신에 대한, 사회에 대한 어떤 사랑이 느껴진다면 당신을 이기주의자로 낙인찍기는 힘들 것입니다.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일본인 판사가 끝까지 읽고 싶어 사형판결을 미루려 했던 것은 그가 조선을 아껴서가 아니라 거기에서 사랑을 느껴서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당신이 독립선언을 할 때 당신을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으로 치부할 준비를 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인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사람’으로 볼 여지는 늘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은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사를 가든 이민을 가든 당신은 어떤 사회에 속합니다. 그 어떤 사회에서도 개인으로서 완벽한 독립은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하던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여기 나로서 존재한다!’, ‘나는 나다.’라는 말. 당신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