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ation/책

그 남자네 집 - 추억을 지킬 수 없다면

DanK 2019. 6. 17. 01:16

1.

내 머릿속 지도의 한가운데를 대동맥처럼 관통하던 안감내는 찾아지지 않았다. 그게 안 보이는데 무슨 수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한단 말인가. 안감내가 복개됐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복개되었더라도 개천과 천변길을 합치면 팔차선 넓이쯤은 되는 대로로 남아있어야 했다. 80년대 초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서 센강을 보고 애걔걔 그 유명한 센강이 겨우 안감내만 하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기억 속의 안감내는 개천치고는 넓은 시냇물이었다. (중략) 나는 그놈의 목욕탕 때문에 그 넓지 않은 이면도로가 안감내를 복개한 길이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 지도의 거리는 실재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만 확보하고 싶은 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컴퓨터 기억장치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언가를 특정한 모습 그대로 기억한다고 생각해도, 사실 거기에는 우리 자신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 때의 감정과 감각이 기억을 덧입힌다고도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들의 기억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온 순간순간들은 우리의 눈으로 스케치되고 우리의 감정으로 채색된다. 다시 말해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정교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기억이 엄청나게 연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기억들 또한 언제든 변하고 의도치않게 망쳐질 수도 있다. 기억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굴레 안에서 서로 엮여있어서, 우리 추억은 언제고 새로 생기는 기억들에 의해 수정되어버린다. 컴퓨터 파일과는 다르게, 우리가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기억은 없다.

 

2.

비밀이라고 해서 부끄럽거나 부도덕한 것하고는 다르다. 내 마음의 밑바닥에서 솜털이 일어서는 것 같은 떨림은 절대로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누구하고 공유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밀이야말로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나보다. (중략) 암놈은 요기조기 집 구경을 하고 나서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잡기만 하면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그래, 그때 난 새대가리였구나.그게 내가 벼락 치듯 깨달은 정답이었다. 나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 까고 살고 싶었다. 그 남자네 집도, 우리 집도 사방이 비 새고 금 가 조만간 무너져내릴 집이었다. 도저히 새끼를 깔 수 없는 만신창이의 집,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새끼를 위해 그런 집은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답이 나오면 비밀은 없어진다. 나는 그렇게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 인생이 살만한 건 정답이 없기 때문인 것을.

 

하지만 어떤 추억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이 그 추억을 소중하게 여기며 한 번 씩 꺼내어 본다면, 그 추억의 무게는 더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그것을 비밀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비밀이 없어지는 시대이다. 나의 결정들에 대해 타인들은 계속해서 이유를 캐묻는다. 그냥 그게 마음에 들었다는 말로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비밀은 공격당하고 가끔씩 나는 어떤 이유를 둘러대면서 그 상황을 눙치고 넘어가려한다. 나는 왜 굳이 남에게 이유를 대야 하고, 또 설명해야 하나. 내가 그 사람과 사는 것에 이유를 대버리면 그것은 정답이 되어버린다. 인생이 살만한 것은 이유 없이 그렇게 결정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3.

그 남자는 오래오래 마치 작별을 고하듯이 감개무량하게 포탄 자국을 쳐다보고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그러나 기둥에 포탄 자국은 없었다. 이사온 지 몇 년 있다 한 차례 집을 고치고 칠할 때, 그 흉터를 메우고 나무 색깔로 칠해서 감쪽같았다. (중략) 그리고 인기척을 더듬어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오래간 만이야, 하나도 안 변했어. 나는 그가 있지도 않은 포탄 자국을 바라본 것처럼 지금은 있지도 않은 구슬 같은 처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자라지 않는 남자를 어찌할 것인가. 퇴행하여 소년이 된 그 남자와 내가 비교가 되었다. 나는 한 해 걸러 아이를 넷이나 낳는 동안 체중이 6킬로나 늘어난 두루뭉술한 여편네가 돼 있었다. 그 남자가 나를 보지 못하는 대신 내 눈에 내가 처음으로 똑똑하게 보였다.

 

슬픈 것은 추억들을 아무리 간직하려고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소중히 보관하려고 해도, 그것을 꺼내보는 나의 손이 언젠가 쪼글쪼글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빛나는 시절 거기 그대로 간직하려 했건만, 정작 우리가 빛을 잃어가면 그 찬란함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누군가는 그 비참한 심정에 질려 빛나는 추억들을 기억 속 어딘가 멀찍이 치워버리고 잘 돌아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수치감으로 그리는 그림이 못나고 끔찍한 그림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온전히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그림이다. 내가 그때는 참 빛이 났었다는 것에서 오는 환희부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것에서 오는 치욕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인생의 특권일지 모른다.